[답십리 청국장 맛집] 순창할머니청국장 – 여름 한가운데, 서울 답십리에서 만난 청국장 한 그릇

한여름 오후, 갈망

민정의 발걸음이 장한평역 앞에서 멈춘다.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 속에서도, 그녀의 마음은 이미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고 있었다. 청국장. 그 구수하고 진득한 맛이 갑자기 간절해진 것이다.

‘오늘은 왠지 뜨끈한 게 먹고 싶어.’

장한편역 근처를 걸으며 그녀는 어릴 적 외할머니 집 부엌의 냄새를 기억한다. 된장 끓는 냄새,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하얀 김, 그리고 그 따뜻함.

작은 발견

걷다가 낡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청국장’이라는 소박한 글씨. 민정은 잠시 망설인다. 처음 보는 집이지만,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건 왜일까.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구나.’

문턱을 넘으며

문을 여는 순간, 세상이 바뀐다. 차가운 도시 대신 정겨운 시골 부엌이, 그리고 청국장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그녀를 맞는다.”어서 오세요.”주인아주머니의 환한 미소. 민정은 구석 테이블에 앉으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이곳에서라면 세상의 더위도, 복잡함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청국장 주세요.”

기다림의 미학

테이블 위로 하나둘 놓이는 밑반찬들. 새콤한 김치, 아삭한 무생채, 정성스럽게 무친 시금치나물. 각각이 누군가의 손길을 거쳐 온 흔적이 역력하다.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하나의 멜로디가 된다. 뚝배기 뚜껑 열리는 소리, 국자로 젓는 소리, 그리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청국장의 노래.

‘맛있는 음식 앞에서의 기다림은 설렘이다.’

첫 숟가락의 마법

뚝배기가 도착한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빨간 국물 위로 콩알들이 춤을 춘다. 민정은 숟가락을 든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순간, 세상이 멈춘다.

뜨거움 뒤로 밀려오는 구수함. 콩의 고소함과 발효된 깊은 맛이 혀끝에서 꽃을 피운다. ‘아, 이 맛이야.’ 어릴 적 기억이 하나씩 되살아난다. 외할머니의 손, 어머니의 미소, 그리고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

두 번째, 세 번째 숟가락. 밥알과 함께, 김치와 함께. 더위에 지쳤던 몸이 서서히 깨어난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히는 땀조차 달콤하다.

충만한 마무리

뚝배기 바닥이 보일 때까지. 민정은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아껴가며 먹는다. 배는 부르지만 마음은 더욱 따뜻해진다.

“잘 드셨어요?” 주인아주머니의 다정한 목소리.

“정말 맛있었어요. 마치 고향에 온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또 오세요.”

계산을 하며 민정은 생각한다. 이런 곳이 있어서, 이런 맛이 있어서, 세상은 여전히 따뜻하구나.

골목을 나서며

다시 뜨거운 거리로 나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몸 안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마음에는 소박한 행복이 자리한다.

‘다음에는 누구와 함께 올까?’

민정은 걸음을 옮기며 다짐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눠 먹고 싶은 맛, 기억해두고 싶은 장소. 답십리 거리에 작은 청국장집이 그녀의 마음속 지도에 또 하나의 별이 되었다.

‘진짜 맛집은 혼자 독점하기엔 아까운 곳이다.’